뮤지컬 ‘시카고(Chicago)’는 1920년대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풍자극으로, 화려한 쇼와 치밀한 연출, 날카로운 사회비판이 어우러진 브로드웨이 대표 클래식입니다.
1975년 초연 이후 수많은 재공연과 영화화로 이어진 ‘시카고’는 단순한 뮤지컬을 넘어 사회의 부조리를 음악과 무대를 통해 해부하는 작품입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며,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시카고’의 줄거리, 연출, 음악, 사회적 메시지 등을 심도 있게 리뷰해보겠습니다.
줄거리와 메시지: 범죄와 미디어, 그리고 쇼
뮤지컬 ‘시카고’는 단순한 살인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록시 하트는 외도를 저지른 남편과 다툰 끝에 연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거짓말을 일삼습니다. 수감된 그녀는 같은 감옥에 있던 벨마 켈리라는 또 다른 여성 살인범을 만나게 되며, 이들은 서로의 명성과 인기를 놓고 경쟁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 빌리 플린이 등장하여 미디어를 활용한 이미지 전략으로 대중의 동정과 관심을 유도합니다. 범죄자조차도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하는 구조입니다.
작품의 핵심은 바로 미디어가 만들어낸 ‘쇼’와 대중의 집단 심리에 대한 비판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언론을 통해 스타로 떠오르는 록시 하트와 벨마 켈리는 현실 사회에서 유명세와 스캔들이 어떻게 권력이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시카고’는 10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도 맞닿아 있는 주제입니다. SNS, 미디어 소비, 스타 마케팅의 위험성과 허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저 흥미로운 스토리가 아닌, 오늘날 우리 사회의 거울입니다.
무대 연출과 음악, 댄스: 모든 장면이 완성형
‘시카고’의 또 하나의 강점은 바로 무대 연출입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오케스트라가 무대 중앙에 직접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대를 음악적 공연장처럼 연출하는 ‘콘서트 뮤지컬’ 스타일을 채택한 것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의 결합을 극대화시킵니다. 오케스트라와 배우가 같은 무대 위에서 호흡하며, 음악과 장면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집니다.
전체적인 무대 구성은 매우 심플하지만, 조명과 배우들의 동선, 안무로 공간감과 장면 전환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Cell Block Tango’, ‘All That Jazz’, ‘Roxie’ 등 대표 넘버들은 각각의 장면에서 캐릭터의 감정과 스토리를 완벽하게 전달합니다. 안무는 밥 포시(Bob Fosse) 스타일 특유의 절도 있고 섹시한 움직임을 그대로 계승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시대 배경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배우들의 표현력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록시 하트 역을 맡은 배우가 유쾌하고 당찬 매력을, 벨마 켈리는 냉철하고 고급스러운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캐릭터 간의 대비를 극대화했습니다. 빌리 플린 역의 배우 역시 절묘한 타이밍의 유머와 언변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했습니다. 전체 앙상블 또한 매우 높은 수준으로, 군무와 화음, 움직임 모두에서 완성도 있는 무대를 선사했습니다.
클래식에서 현대까지: 시카고의 시간 초월성
‘시카고’는 그야말로 클래식한 뮤지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현대성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시카고’가 단순히 과거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어떻게 진실보다 쇼에 열광하는가? 언론은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며, 왜 사람들은 이를 쉽게 믿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1920년대에도 유효했지만, 2024년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이번 관람에서는 젊은 세대 관객들이 매우 많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시카고’가 단지 오래된 작품이 아니라, 지금 시대와 연결되는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출과 대사는 그대로이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와 메시지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시카고’는 페미니즘적 해석으로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여성 중심의 서사,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성적 자유와 자기 결정권을 가진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구조는 단순히 범죄극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작품입니다. 록시와 벨마는 비록 범죄자지만,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현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시카고’는 단순히 과거를 그린 뮤지컬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사회 비판과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무대 연출과 음악, 배우들의 열연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2024년 내한 공연을 통해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관객으로서 무대를 보는 내내 감탄과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 클래식 중에서도 시대를 초월한 ‘시카고’는 꼭 한 번 관람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드립니다.